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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EEG)의 세계: 뇌의 전기 신호를 읽는 법

뇌전도(EEG)의 기본 원리, 주파수 대역의 의미, 임상 응용, 그리고 AI와 결합한 최신 동향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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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한스 베르거(Hans Berger)가 인간의 두피에서 전기 신호를 기록하는 데 처음 성공했을 때, 학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두개골 밖에서 뇌의 전기 활동을 측정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개발한 뇌전도(electroencephalography, EEG)는 이후 약 100년간 신경과학과 임상 신경학의 핵심 도구로 자리잡았다.

EEG의 기본 원리

brain scan MRI neuroscience imaging

EEG는 두피에 부착한 전극으로 대뇌 피질의 신경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전기장을 기록한다. 개별 뉴런의 활동은 너무 미약해서 두피에서 감지하기 어렵지만, 수천에서 수백만 개의 피질 뉴런이 동기화하여 활동하면 측정 가능한 크기의 전위 변화가 만들어진다.

기록되는 신호의 주 원천은 피질 표면에 수직으로 배열된 **추체세포(pyramidal neuron)**의 시냅스후전위(postsynaptic potential)다. 활동전위가 아닌 시냅스후전위가 주된 원천인 이유는, 시냅스후전위가 수십 밀리초간 지속되어 시간적 합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파수 대역과 그 의미

EEG 신호는 관습적으로 주파수에 따라 여러 대역으로 분류된다.

  • 델타(δ, 0.5~4Hz): 깊은 수면 상태에서 주로 관찰된다. 깨어 있을 때 과도한 델타 활동은 뇌 손상이나 대사 이상을 시사할 수 있다.

  • 세타(θ, 4~8Hz): 졸림, 가벼운 수면, 명상 상태와 관련된다. 해마의 세타 리듬은 기억 인코딩과 공간 탐색에 중요하다.

  • 알파(α, 8~13Hz): 베르거가 최초로 발견한 리듬. 눈을 감고 이완한 상태에서 후두부에서 두드러진다. 눈을 뜨면 감소하는데, 이를 '알파 차단(alpha blocking)'이라 한다.

  • 베타(β, 13~30Hz): 활발한 사고, 집중, 문제 해결 시에 증가한다. 운동 피질에서의 베타 활동은 운동 계획 및 억제와 관련된다.

  • 감마(γ, 30Hz 이상): 고차 인지 기능, 의식, 주의의 결속(binding)과 관련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근육 활동의 오염에 취약하여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임상 응용

EEG의 가장 전통적인 임상 응용은 **간질(뇌전증)**의 진단이다. 뇌전증 환자의 뇌파에서는 극파(spike), 극서파복합(spike-and-wave complex) 같은 특징적인 이상파형이 관찰된다. 장시간 비디오 EEG 모니터링은 발작의 유형과 발생 부위를 정확히 파악하여 수술 전 평가에 필수적이다.

이 외에도 EEG는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활용된다:

  • 수면 장애 진단을 위한 **수면다원검사(polysomnography)**의 핵심 구성 요소

  • 수술 중 뇌 기능 모니터링

  • 뇌사 판정의 보조 기준

  • 혼수상태 환자의 의식 수준 평가

  • 신생아 뇌 기능 감시

최신 동향: AI와 EEG의 만남

최근 딥러닝의 발전은 EEG 분석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합성곱 신경망(CNN)과 순환 신경망(RNN)을 활용한 자동 뇌파 분석은 간질파 검출, 수면 단계 분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신호 해독 등에서 전문가 수준의 성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웨어러블 EEG 기기의 소형화와 저가화가 진행되면서, 연구실 밖에서의 장기 뇌파 모니터링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는 일상 환경에서의 뇌 상태 추적, 감정 인식, 인지 부하 모니터링 등 새로운 응용 분야를 열고 있다.

EEG의 한계

EEG의 강점은 높은 시간 해상도(밀리초 단위)와 비침습성이지만, 공간 해상도가 낮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두피에서 기록한 신호가 정확히 어느 뇌 영역에서 발생했는지를 역추정하는 것(역문제, inverse problem)은 수학적으로 유일한 해를 갖지 않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밀도 EEG(256채널 이상)나 MEG(뇌자도)와의 병용, fMRI와의 동시 기록 등이 활용된다.

거의 100년이 된 기술이지만, EEG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결합하고, 소형화되며, 새로운 분석 기법이 적용되면서 그 가능성은 오히려 확장되고 있다. 뇌의 전기적 언어를 읽는 이 기술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신경과학의 핵심 도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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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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